창립무렵의 선경직물
최종건 창업회장은 한국전쟁 중 폐허간 된 선경직물 건물을 복구해 재건하기로 결심, 건물 복구와 흩어진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하였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한국전쟁 중 폐허간 된 선경직물 건물을 복구해 재건하기로 결심, 건물 복구와 흩어진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하였다.
선경직물은 6 · 25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완파되고 말았다. 1953년 초,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둘러본 최종건 창업회장은 공장을 재건하기로 결심하고 그 해 정부로부터 선경직물 공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선경직물을 새롭게 창립했다.
선경직물은 해외통상을 인수한 후, 상호를 해외섬유로 변경, 완제품을 생산해 수직계열화 완성이라는 원대한 구상의 첫 단추를 끼웠다. 해외섬유는 선경직물이 인수한 첫 번째 기업이다.
1969년 7월 1일, 폴리에스터 공장을 선경화섬에서 분리해 합작법인 선경합섬을 설립했다. 선경합섬의 설립으로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사업 병행 추진이 완성됐다.
인재양성을 위해 선경이 후원한 MBC장학퀴즈는 1973년 2월 18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영되고 있다.
당시 최종현 선경직물 사장은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의 사장으로 취임하고 선경직물 회장으로 취임하며 최종현 선대회장 체재가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아카데미 설립을 평생 꿈으로 삼아오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고등교육 증진에 기여할 우수한 학자를 양성해 학문 발전과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데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 위해 폴리에스터 원면을 선적하고 있다. 선경은 1976년 수출액 1억 1,335만 달러, 당기순이익 65만 4,000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선경화학(현 SKC)은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했다.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를 체계적으로 정립 제정함으로써 SK의 경영근간을 마련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석유상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1980년 초 원유수급 위기를 맞은 정부는 ‘석유수급조절명령’을 발동했다. 정부의 석유수급조절명령 발동에 따라 선경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장기 원유공급계약을 체결하고 1980년 7월 17일부터 국내 정유업계에 도입 원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유공은 석유개발에 뛰어들어 세 번째 만에 북예멘에서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마리브 유전 개발은 첫 발견에서 본격 생산까지 40개월이 소요돼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단기간의 성과로 꼽혔다.
울산 컴플렉스에서 9개 신규공장 합동 준공식이 열렸다. 이로써 석유화학의 필수제품을 위한 생산시설을 완전히 갖춰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선경인더스트리는 의약사업 진출을 결정하고 생명과학연구소를 발족함으로써 의약사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1991년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는 1992년 정식으로 한중 수교를 맺기 전의 일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에 대한 2차 심사발표 결과 압도적인 차이로 최고 점수를 획득했으나 정치적 논란이 일자 사업권을 포기하고 한국이동통신 입찰에 참가해 1994년 7월 한국이동통신의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대전시 대덕구에 위치한 대덕기술원은 1993년 8월 1차 준공 후, 1993년 12월 연구·지원시설 준공으로 대덕연구소에서 대덕기술원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95년 5월 25일 최종 준공됐다.
1995년 CDMA시연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 이동통신은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상 용화에 성공하고 1996년 3월 26일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기념식을 개최했다. 상용화 개시 9개월 만에 전국 주요 도시에 CDMA이동전화 서비스를 개통했다.
CDMA상용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한국이동통신은 그룹 내 처음으로 1997년 3월 24일 신 CI 선포식을 갖고 SK텔레콤으로 새롭게 출발했고 10월 1일에는 유공이 SK주식회사로 변경했다. 1998년 01월에는 그룹 내 모든 계열사가 신 CI 선포 및 경영혁신 결의 대회를 개최하여 모든 CI 변경작업을 마무리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타계한 후 SUPEX추구협의회에서는 차기 회장 추대에 대해 논의하였고, 그 결과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선임 되었다.
SK는 1999년 12월 6일 중국 베이징 CEO세미나를 개최해 ‘또 하나의 중국기업 SK’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행복 극대화’를 뉴 SK 기업이념으로 천명한 SK는 그룹 차원의 SK자원봉사단을 발족해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SK는 새로운 경영이념인 ‘행복경영’을 구현하고 글로벌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로고인 ‘행복날개’를 개발했다.
SK는 2006년 11월 1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센터를 관리운영하는 행복나눔재단을 개소했다. 개소식 이후, 행복나눔재단은 행복도시락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일자리 창출 사업을 펼쳐 나갔다.
SK가 지주회사 체제로 공식 출범했다. SK는 기존 SK주식회사가 7월 1일부로 존속법인인 지주회사 SK주식회사와 신설법인인 사업회사 SK에너지로 분할된 데 이어, 2일 이사회와 출범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SK1979년 최초로 정립된 이래 SKMS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해왔다.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경영철학과 통일된 의사결정 기준 마련을 목표로 첫선을 보인 SKMS가 정립 30주년을 맞았다.
SK그룹은 SK차이나의 공식 출범식을 열고 글로벌 SK를 향한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박영호 사장은 ‘SK차이나는 SK 글로벌리제이션의 첫 거점이자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말하며, 원대한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2011년 1월 1일부로 석유사업과 화학사업을 분사해 존속법인인 SK이노베이션과 신설법인인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 3개사로 출범해 1월 3일 독자경영 출범식을 가졌다. 이에 앞서 2009년 10월 윤활유 전문기업 SK루브리컨츠가 출범한 바 있다.
하이닉스는 2012년 3월 26일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새출발을 선언했다.
SK는 2012년 11월 CEO세미나에서 글로벌 성장을 위한 새로운 그룹 경영 방식인 ‘따로 또 같이 3.0’도입을 논의하고 2013년부터 시행할 것을 합의했다. ‘따로 또 같이 3.0’은 관계사별 자율책임경영을 전제로 각 사의 CEO와 이사회는 회사 경영에 대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게 된다.
SK는 2008년에 아시아 기업 최초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SINOPEC이 추진하는 대규모 에틸렌 생산공장 합작사업에 참여해 2013년에 '중한석화'를 준공하고 상업화에 돌입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이하 ‘재단’)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 되던 시절, ‘세계 1등 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故 최종현 회장의 확고한 의지로 설립된 교육·연구 지원의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SK주식회사와 SK C&C는 2015년 8월 합병을 통해 통합 지주회사로 거듭났다.
SK주식회사는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위해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제조하는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SK 기업문화의 근간인 SKMS(SK Management System)를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그룹의 혁신 의지를 담아 개정을 진행하였다.
SK는 2012년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SK머티리얼즈, SK에어가스, SK트리켐, SK쇼와덴코 등에 이어 반도체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SK 실트론 인수로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의 원조'로 불리는 도시바(東芝)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인수하는 컨소시엄에 포함되면서 향후 기대 효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